리영희의 좌우날개로 날다(9/16)-역사의 왜곡은 한번으로 족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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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부의 엉뚱한 <새날개론>에 대하여... 원조 새날개론을 공부하자!
1994년 7월 30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리영희 한양대 교수 <역사의 왜곡은 한번으로 족하다> 사람마다 사람됨을 재는 인격이 있듯이 가정과 가문에는 가풍이 있고, 국민·국가·민족을 형성하는 집단에는 그 됨됨을 가름하는 국민정신, 민족정기 또는 국가정통이 있다. 인격은 오직 그 자신만이 가꿀 수 있듯이 가풍도 그 가정과 가문이 가꾸고 지키는 것이지 다른 가문이 대신해 줄 수 없다. 국민이나 국가 민족의 "정통" 또한 그들 자신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이다. 50년 전, 오랜 외세지배의 식민지 통치에서 해방된 신생 민족 독립국가들의 "인격"은 그 민족과 국가가 외세 식민통치의 잔재를 얼마나 말끔히 자신의 의지로 청소했는가로 평가된다. 많은 아시아 신생 독립국가들의 경우, 그것은 서구·미국·일본 식민통치 잔재의 청산이었고, 한(조선)민족의 경우는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숙청이었다. 노예 상태에서 해방된 민족이 모든 일을 제쳐두고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해방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뒤에, 남쪽의 신생 국가는 국가의 "인격"을 확립할 이 민족적 과업을 거부했다. 그 결정적이면서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것이 리승만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 자신이 친일파 집단을 앞세워 총부리로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를 해산시키고 "반민특위법"을 폐기해 버린 반민족적 행위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 친일파·민족반역자의 전면 숙청으로 국가를 시작한 북한과 국가·정부의 정통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그 뒤 한 시기,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 각계 각 분야를 지배하는 기이한 사회가 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사실은 사실이고, 역사는 그 모든 일을 말해주고 있다. 다른 분야는 잠시 접어두고, 일제 식민통치의 직접적·물리적 앞잡이였던 일제 경찰 복무자의 해방 후(1946년 11월 현재) 경찰 복무 현황은 다음과 같았다. 이 한심스러운 사실은 그러나 미국 군정시대의 현실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해방 후 15년이 지나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12년 후(1960년 5월7일 현재)에도 총경 70%, 경감 40%, 경위 15%가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고서야 어떻게 정색하고 국가의 "인격" 운운할 수 있겠는가? 이 중대한 민족적·국가적·국민적 "인격 상실"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이 나라의 각급 학교 공식교육의 역사 교과서에는 이 사실이 한마디도 언급된 바가 없었다. 나는 오래전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 일에 관해 질문했을 때, 그것에 관해서 "배운 일이 없다"는 학생들의 한결같은 대답을 듣고 쓰러질 듯이 놀랐던 경험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엊그제 신문에서 정부(교육부)가 96년부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리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반역자 숙청을 거부하고 "반민특위"를 강제 해산한 사실을 기재하기로 결정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반가운 일이다.교육부 당국자는 그러나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 잔재 청산을 반대한 것이 건국의 정통성에 하자가 있는 것으로 비치지 않도록" 기술하려고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과의 위상도 고려해서라고 한다. 그 고심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또다른 역사 날조, 역사 왜곡을 해서는 안될 일이다. 부분적이지만 하자는 하자이다. 과오를 깨달았으면 겸허하게 시인하고 전모를 밝히는 일만이 남아 있다. 친일파·민족반역자들에게 대한민국을 떠맡긴 해방 이후의 국가·민족적 과오가 그후 반세기 동안 국민생활의 많은 거짓과 불행의 원인이었다. 이제 50년 만에 진실의 일부를 알게 되는 어린 후세대들과 오랫동안 속아온 국민대중을 두 번 속이는 일일랑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역사의 날조는 한 번으로 족하다. 연재 리영희의 좌우 날개로 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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