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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의 좌우날개로 날다(15/16) -통일철학과 인물의 전면쇄신
작성자 : 고** 작성일 : 2023-09-11 조회 : 67
담당부서
윤정부의 엉터리 '새날개론'에 대하여, 원조 '새날개론'을 펴신 리영희 교수님의 글을
싣는다. 공부해서 남 주자!        (30년 전 글인데,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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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0월 23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리영희 한양대 교수 <통일철학과 인물의 전면쇄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어제 조인·발표된 조-미협정은 한(조선)민족의 운명을 좌우한(하는) 세번째의 역사적 결정이다. "제3의 해방 문서"라고 할까.

첫번째 문서는 한민족의 일제 식민지에서의 해방을 결정한 51년 전의 카이로선언이고, 두번째 결정은 41년 전의 6·25전쟁 휴전협정이다. 제1의 문서가 민족의 정치적 해방을 가져왔고, 제2의 협정이 3년간의 전쟁으로 인한 죽음과 파괴로부터의 해방이었다면, 1994년 10월21일의 조-미 협정은 한민족과 한반도를 덮고 있던 "핵전쟁의 위기로부터의 해방"이다. 50년간의 군사대결 체제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카이로선언은 한민족이 없는 곳에서 연합국(미국)이 결정했고, 휴전협정은 북한과 미국이 결정했다. 이제 다시 남한이 없는 곳에서 미국과 북한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제3의 결정에 조인한 것이다. 그 어느 곳에도 남한은 없다.

대한민국의 의지를 담은 결정과 문서가 있기는 있었다. 1972년 "평화적.자주적.외세배제적 통일" 원칙에 합의했던 "남북 7.4공동성명"과,민족의 환호 속에 2년 전에 조인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그것이다.

그러나 "7·4공동성명"은 남북의 독재권력이 정권 영구화의 흉계를 품은 작품이었던 까닭에, 문서에 조인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백지화되었다. 2년 전에 세계의 갈채 속에 조인된 민족화합의 문서는 북한의 핵개발 계속으로 증발했고, 남한의 정부를 대표한 법무장관이 그 문서들은 "일종의 신사협정일 뿐 이행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다"는 유권해석으로 그 효과가 부정되었다.

앞으로 남북간의 모든 행위는 "합의서"와 "선언"에 기초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미국과 세계에 대하여 핵개발의 투명성을 보증하려는 마당에 김영삼 정부는 이제 그 문서들이 "일종의 신사협정일 뿐"이라고 부정했던 노태우 정부(법무장관)의 중대한 협정위반을 바로잡는 공식적·정치적 선언부터 해야 하리라고 믿는다.

조-미 협상 과정과 협정 체결에 대해서 한국정부의 무력과 소외를 비난해온 극우·반공·수구·냉전주의적 개인과 세력은 그 원인과 책임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들 자신들에게 있음을 차제에 대오각성해야 마땅하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리승만 정권 말기에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대영국일전불사" 강경외교론(자들)이 떠오른다.

리승만 정부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별도 없이, 그리고 우방들의 반대와 국제법과 세계적 조류를 무시하고 한반도 주변 해역에 "평화선(리승만 라인)"이라는 것을 선포하여 그 안에 들어오는 외국(주로 일본) 선박을 마구잡이로 나포하던 때이다. 어느 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영국 상선이 그 안을 통과하고 있었다. 강경론자들의 아우성이 일어났다. 그러자 리승만 대통령과 정부는 "영국과의 전쟁도 불사한다"고 선언했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정상적 생존 관계로 서로 껴안으려는 이제부터는, 시대의 유물이 된 극우·반공·냉전·전쟁찬양·무력숭배식 "맹목적 애국주의"는 더욱더 한국(남한)의 자주성과 선택의 범위를 옥죌 뿐이다.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진정 정치·외교상 자주적이기를 원하거든 대미관계에서의 예속성을 근원적으로 규정한 한-미 방위조약의 불평등성을 바로잡는 노력과, 국민의 민주적 역량을 유감없이 국력화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의 철폐로 시작되는, 낡은 인물들과 제도 및 통일철학의 과감한 교체·쇄신이불가피해 보인다.

연재 리영희의 좌우 날개로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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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