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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5일 청산면 노루목 위령비 제막에 감사하며...(1)
작성자 : 고은광순 조회 :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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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청산면으로 귀촌 후 2015년 팀작업으로 여성동학다큐소설13권을 출간한 고은광순입니다. 13권 중 청산편<해월의 딸 용담할매>와 보은편 <깃발 휘날리며>를 썼지요.

2021년에는 <실미도로 떠난 7인의 옥천쳥년들>을 썼는데 그 책이 인연이 되어 2022년 5월에 <박정희비자금 우리 통장에 있어요>를 편집자로 참여해 만들었습니다.

최근 그 책으로 북토크를 남해, 창원, 전주에서 했고 어제는 거창에서 했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막혀있던 쳇증이 뻥 뚫렸다" 는 이야기를 참여자들이 해 주시니 참말로 감사할 따름.

사실, 실미도 책이나 박정희비자금 책이나 책을 만든 지향점은 같습니다.
미국과 군사독재자인 박정희가 망쳐놓고 비틀어놓은 한국의 현대사를 바로 조명하는 것이지요.

어제는 강연 전에 먼저 거창사건희생자추모공원에 들렸습니다. 잘 꾸며 놓았더군요. 사건은 1951년 2월에 터졌습니다. 국군이 빨치산 소탕을 구실로 거창군의 주민 719명을 죽였습니다. 그 중에 359명이 14세 미만이었지요.    50%, 절반이 어린아이들이었던 것입니다.

진상조사를 하러 달려간 국회의원들 차에 이승만 정부는 인민군복을 입힌 국군에게 총격을 가하도록 했습니다. 진상조사는 무산이 되어버렸지요.

유가족들은 사실을 알리려 노력하며 위령비를 세웠는데 박정희 정부는 유가족을 빨갱이로 몰며 위령비를 땅에 묻어버렸습니다.

정부가 저지른 폭력은 친미, 반공 정부 아래에서 오래도록 감추어져 왔지요.
그러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야 비로소 추모공원이 만들어진 것인데... 그간의 고초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도 하기 힘듭니다.

국군이 무고한 자기 나라 국민을 죽였는데 50여 년을 말도 못하고 빨갱이로 몰려 살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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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예곡다리 근처에 노루목이 있습니다.    10월 5일    위령비 제막식이 열린다네요. 625때 청산 사람들이 총격에 사망한 곳이랍니다. 미군의 총격에 말이지요.

1950년 10월 5일 낙동강 전투에 참전하고 유엔군과 함께 북진하던 국군이 청산면을 들른다고 하자 청산면시국대책위와 청산지서에서는    그들에 식사제공을 하기 위해 청산의 청장년 40~50명을 차출하여 명티리로 땔감을 구하러 보냈답니다.    장작을 구해 돌아오다가 노루목에서 잠시 쉬는 청산면민들을 미군 비행기가 인민군으로 오인... 폭탄투하와 기관총 사격...8명이 죽고, 10여명이 부상.

그런데 친미, 반공, 군사독재 정권하에서는 입도 벙끗 할 수 없었겠지요. 70년이 지나서야 이제서야 그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지네요. 억울한 국민의 입을 틀어막었던 국가의 폭력... 이제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애써주신 여러분들이 참 고맙네요.

귀촌 후 바로 찾아갔던 황간 노근리. 그곳에서도 미군이 피난가던 주민들(남녀노소 226명)을 쏘아죽인 굴다리가 있습니다. 추모공원을 만드는데 역시 50년이 넘게 걸렸지요. 유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제3자인 저도 가슴이 따갑습니다.

아무쪼록    민족의 평화가 하루 속히 정착되기를...
외세에 짓눌려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를...

*미국은 핵폭탄을 던진 일본과 6년만에 정상국교를 회복했습니다.
*미국은 10년 동안 700만톤의 폭탄을 던진 베트남과도 1995년 수교를 맺었지요.

그런데 왜 3년을 싸운 남북한은 70년이 되도록 원수가 되어 전쟁준비를 해야 합니까? 앞으로 700년? 7000년?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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