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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이 노래

정지용(鄭芝溶) 시인 향수(鄕愁)

지용과 함께 1930년대 우리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지용이 “조선 신시사상(新詩史上)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소월과 지용은 동갑이지만, 그들의 시를 보면 100년의 차이가 난다”고 유종호는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소월이 한국적 한(恨)의 정서를 바탕으로 정통적이고 잠재적인 모국어를 구사했다면, 지용은 시적 대상의 정확한 묘사력과 언어조탁, 시적 기법의 혁신으로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星座) 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1. 1902
      1세
      5월15일(음력)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번지에서 정태국과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남.
      부친은 약상(藥商)을 경영하여 여유 있는 생활을 누렸으나 어느 해 여름 홍수로 집과 재산을 잃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함. 부친의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동생 둘이 있었음.
      지용의 아명은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하여 지룡(池龍)이었고 이 발음을 따서 본명은 지용(芝溶)으로 했음. 세레명은 프란시스코.
    2. 1910
      9세
      옥천공립보통학교(현재 죽향초등학교)에 들어감.
    3. 1913
      12세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
    4. 1918
      17세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함. 학교성적은 우수하고 집안이 어려워서 교비생(校費生)으로 학교를 다녔음.
      재학당시의 교우로는 3년 선배인 홍사용, 2년 선배인 박종화, 1년 선배인 김윤식, 1년 후배인 이태준 등이 있으며 이 무렵 부터 문재를 나타내어 박팔양 등과 8명으로 요람동인을 만들어 동인지<요람>을 프린트판으로 10여호를 내었음.
    5. 1919
      18세
      3·1운동이 일어나 교내문제로 야기된 휘문사태의 주동이 되어 이선근과 함께 무기정학을 받고 1,2학기 수업을 받지 못했음. 이 해 12월 <서광>창간호에 소설>3인<을 발표함 지용의 유일한 소설이며 첫 발표작품이 됨.
    1. 1922
      21세
      •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함.
      • 이때까지 계속 아버지의 친구 유복영의 집에서 생활함.
      • 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첫 시작품인<풍랑몽>을 씀.
    2. 1923
      22세
      • 휘문고보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문우회에서 만든 <휘문>창간호의 편집위원이 됨.
      •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일본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에 입학함.
    3. 1924
      23세
      시 <석류>·<민요풍 시편>을 씀.
    4. 1925
      24세
      <새빨간 기관차>·<바다>등을 씀.
    5. 1926
      25세
      <학조>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 9편의 시, <신민>·<문에시대>에 <Dahlia>·<홍춘>등 3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활동이 시작됨
    6. 1927
      26세
      • <뻣나무 열매>·<갈매기>등 7편의 시를 교토와 옥천을 오가며 씀.
      • <신민>·<문에시대>·<조선지광>·<청소년>·<학조>지에 <갑판우>·<향수>등 30여편의 시를 발표함.
    7. 1928
      27세
      • 장남 구관 출생(음력 2월)
      • <동지사문학>3호에 일어시(日語詩) <馬1·2>를 발표함.
    8. 1929
      28세
      • 도시샤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함.
      • 그 해 9월 모교인 휘문고보 영어과교사로 부임하고 부인과 장남을 데려와 종로구 효자동에 자리잡음. 12월에 시 <유리창>을 씀.
    1. 1930
      29세
      • 시문학동인으로 참가,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됨. 동인으로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이 있음.
      • <조선지광>·<시문학>·<대조>·<신소설>·<신생>지에 <겨울>·<유리창>등 20여 편의 시와 역시(譯詩)<소곡(블레이크 원작)>등 3편을 발표함.
    2. 1932
      31세
      <신생>·<동방평론>·<문예월간>지에 <고향>·<열차>등 10편의 시를 발표함.
    3. 1933
      32세
      • 삼남 구인 출생
      • 6월에 창간된 <가톨릭 청년>지의 편집고문을 맡으며 ,해협의 오후 2시.등 8편의 시와 산문, 소묘1·2·3을 발표함.
    4. 1934
      33세
      • 종로구 재동으로 이사하고 장녀 구원 출생.
      • <가톨릭 청년>지에 <다른 한울>·<또하나 다른 태양>등 4편의 시를 발표함
    5. 1935
      34세
      •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을 시문학사에서 출간함, 거의 발표 되었던 작품 89편으로 수록됨.
      • <가톨릭청년>·<시원>·<조선문단>지에 <홍역>·<비극>등 8편의 시를 발표함.
    6. 1936
      35세
      •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
      • 북아현동 자택에서 부친 돌아가심(음력 3월) <조광>·<소년>지에 <옥류 동>·<별똥이 떨어진 곳>을 발표함.
    7. 1938
      37세
      <동아일보>·<조선일보>·<삼천리문학>·<여성>·<조광>·<소년><삼천리>·<청색지>에 산문 <꾀꼬리와 국화>, 산문시 <슬픈우 상>·<비로봉>,평론 <시와 감상>, 그외 수필 등 약 30여편을 발표하는 한편 블레이크와 휘트먼의 시를 번역하여 최재서 편(編)의 <해외서정시집>에 수록함. 한편으로는 천주교에서 주관하는 <경향잡지>를 돕는 등 문필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한 해임.
    8. 1939
      38세
      • 문장지의 시부문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킴.이태준은 소설부문을 맡았음.
      • <동아일보>·<박문>·<문장>·<학우구락부>·<휘문>지에 <수산12>·<백록담>들 7편의 시와 <시의 옹호><시의 언어>등 5편의 평론, 시선후평(詩選後評) 및 수필등을 발표함.
    1. 1940
      39세
      <여성>·<태양>·<문장>·<동아일보>·<삼천리>지에 기행문 <화문행각(畵文行脚)>과 서평 및 시선후평과 수필, 시<천주당>등을 발표함.
    2. 1941
      40세
      • <문장>22호 특집으로 조찬>·<진달래>들 10편의 시가 특집으로 실림.
      • 둘째 시집 <백록담>이 문장사에서 발간됨
    3. 1944
      43세
      제 2차대전의 말기에 이르러 서울 소개령으로 부천군 소사읍 소사리로 이사함.
    4. 1945
      44세
      해방과 함께 휘문중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 여자대학교)교수로 옮겨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함.
    5. 1946
      45세
      • 다시 서울의 성북구 돈암동으로 이사함(46세).
      • 6월에 <지용시선>이 을유문화사에서 나옴. <정지용시집>과 <백록담>에서 <유리창> 등 25편을 지용 자신이 가려 뽑아낸 것임. 경향신문사 주간으로 옮김. 조선문학가동맹의 아동분과위원장으로 추대되었으나 본의가 아니었으므로 활동한 일은 없음.
    6. 1947
      46세
      • 경향신문사의 주간직을 사임하고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로도 출강.「시경」을 강의함. <경향신문>에 <청춘과소년>등 7편의 역시(휘트먼 원작)와 <사시안의 불행>등 시문과 수필을 발표함.
    7. 1948
      47세
      • 이화여자대학교를 사임하고 녹번리초당(현재 은평구 녹번동)에서 서예를 하며 소일함
      • 박문출판사에서 <문학독본>이 나옴(2월). <사시안의 불행>등 37편의 시문, 수필, 기행문 등이 수록됨.
    8. 1949
      48세
      <산문>이 출간됨(3월). 시문,수필, 역시(휘트면) 등 55편이 수록됨.
    1. 1950
      49세
      • <문예>지에 <곡마단>·<사사조오수(四四調五首)>를 발표함(2월).
      •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등 33인이 함께 수용 되었다가 그 후 폭사 당한 것으로 추정.
    2. 1971
      부인 송재숙 70세를 일기로 별세.
    3. 1982
      장남 구관과 조경희, 송지영, 이영도, 모윤숙, 김동리, 김춘수, 정비석, 김정옥, 방용구, 한갑수, 박화성, 최정희. 박두진, 조풍연, 윤석중, 백 철, 구상, 이희승, 양명문, 서정수, 피천득, 이봉구, 이헌구, 김팔봉, 김갑순, 유종호, 이숙례, 이봉순., 문덕수, 백낙청, 노기남, 황동규, 황경운, 김현자, 김정한, 김지수, 안석자, 이선근, 김학동 등 48명의 문인과 각계인사들이 납북 후 묶여있었던 정지용문학의 회복운동을 시작함.
    4. 1988
      • 3월31일 정지용의 문학이 해금됨. 4월 지용회 결성. 초대회장 방용구.
      • 5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제 1회 지용제를 지냄
      • 6월 25일 고향인 옥천의 관성회관에서 다시 지용제 개최 이후 16회를 이어옴.
    5. 1989
      • 1989 지용시문학상 제정.
      • 제1회 수상자 박두진, 2회 김광균, 3회 박정만, 4회 오세영, 5회 이가림, 6회 이성선, 7회 이수익, 8회 이시영, 9회 오탁번, 10회 유안진, 11회 송수권, 12회 정호승, 13회 김종철, 14회 김지하, 15회 유경환
    6. 1997
      제2대 회장 이근배.
    7. 2002
      5월 정지용 탄신 100주년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심포지움 개최함
    8. 2003
      이달의 문화인물 (5월)로 선정 기념 서울지용제 및 지용문학 심포지움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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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8.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