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보고에서 유학시절까지

  • 지용이야기
  • 삶의발자취
  • 휘문보고에서 유학시절까지
지용은 학업성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문예활동도 활발하게 하여 교사들의 귀여움을 받은 것은 물론 학생들 사이에도 인기가 있었다.

지용은 17세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했다. 휘문고보는 성적이 우수하고 형편이 어려운 그에게 재학시절에 장학금을 주었고, 졸업 후에도 유학 비용을 부담했다.
유학을 마치고 모교에서 영어 교사로 16년간 재직하였으니 지용은 통산 27년간 휘문과 관계를 맺은 셈이다.

휘문보고

휘문고보 1학년 때부터 문예활동을 시작한 지용은 그의 발안으로 명명된 동인지 『요람(搖籃)』의 산파역을 맡으며 습작활동을 시작했다. 『요람』의 동인은 고보와 전문학교 학생들로, 지용과 박제찬, 박팔양, 김화산 등이며, 지용이 간부로 있는 휘문고보의 등사기를 이용해서 제작하였다. 지용은 『요람』에 『정지용시집』 3부에 수록된 동시의 절반 이상을 발표했으며, 2학년 때는『서광(曙光)』지에 『3인』이라는 소설도 발표하여 일찍부터 문재를 발휘하고 있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졸업

휘문보고2

지용은 또 학생자치회와 동문회를 연합한 재학생, 동문의 자치기구인 <문우회>의 학예부장이 되어 휘문고보 교지 『휘문』 창간호를 발간했다. 여기에 그의 최초 번역물 3편, 『퍼-스포니와 수선화(水仙花)』, 『여명의 여신 오-로아』,『기탄잴리』 103장 가운데 1~9장을 번역하여 실었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당시 인도는 물론 전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신화적 인물인 타고르의 노벨상 수상작을 무명의 고보학생이 처음으로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용의 원대한 시적 포부를 느낄 수 있다. 김억이 『기탄잴리』를 완역한 것이 1923년 4월인데, 지용은 이보다 조금 앞서서 번역을 시도했던 것이다.

지용은 학업성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문예활동도 활발하게 하여 교사들의 귀여움을 받은 것은 물론 학생들 사이에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교사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순응형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2학년 때인 1919년에 3 · 1운동이 일어났고, 이때 학교마다 휴교 사태가 발생했다. 휘문고 학생들도 많이 검거되었고 그 여파로 이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도서관, 기숙사, 강당의 건립을 강력히 요구하며 일제히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이 사건에서 지용은 이선근과 함께 주동자가 되어 집회에서 연설을 했고, 그로 인해 무기정학을 당했지만 선배들의 중재로 곧 구제되어 무사히 졸업을 했다는 것이다.

지용은 졸업과 동시에 휘문 교비로 일본의 교토에 있는 도시샤 대학 예과에 입학했다. 6년 후인 1929년 동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한국문단과 일본문단에 등단했다. 1926년 6월 『학조(學潮)』창간호에 『카페 프란스』등의 시와 시조 및 동요를 포함한 9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어서 『조선지광(朝鮮之光)』, 『신민(新民)』 등에 작품을 계속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고, 일본의 『근대풍경(近代風景)』에 3년간(1926. 12~1928. 2)『카페 프란스』, 『바다』, 『갑판위』 등 시 13편, 수필 3편을 발표했다.

휘문보고3

『근대풍경』의 편집인은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였는데, 그는 유학시절의 지용에게 문학적 영향을 끼친 일본문단의 비중 있는 문인이었다. 하쿠슈는 『근대풍경』을 창간하기 이전에 이미 10개의 잡지를 간행한 경험이 있으며 1930년에 18권의 전집을 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지용이 일찍부터 시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시어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하쿠슈와의 간접적 만남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기간 중에 지용에게 영향을 준 시인으로 또 윌리엄 블레이크를 들 수 있다. 지용의 졸업논문이 바로 『Imagination in the Poetry of William Blake』였다. 그는 『시문학』 2호에 『봄에게』와 『초밤 별에게』를, 『대조(大潮)』(1930. 3)에 『소곡 1』, 『소곡 2』, 『봄』을 번역하여 발표했다.

정지용의 생애는

  • 유년기(1~16세)
    출생에서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4년간 한문을 수학하기까지의 생애
  • 청년기(17~28세)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을 다니기 까지의 생애
  • 유년기와 청년기는 무엇보다도 지용의 시 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지용의 객지생활은 시작되어, 14세에 상경하여 4년간 한문을 배웠고 5년간 고보를 다닌 후, 6년간 일본 유학생활을 했다.
    지용은 이렇게 14세부터 28세까지 15년 동안이나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그의 객지체험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체험이 그의 시 세계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 장년기(29~44세)
    모교인 휘문고보 교사를 지내기 까지의 생애
  • 말기(44~49세)
    해방에서 6·25전쟁 중에 납북되기까지의 생애

이러한 시기 구분은 시기별로 지용의 생애에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데 따른 것이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최종수정일 201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