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두루마기의 교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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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기를 입은 정지용
휘문고보 교사시절 지용은
늘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다녔다

일제가 강요하는 복장을 거부하고 우리의 전통 복장을 고수했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민족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인 것이다.

지용은 1929년 3월 도시샤 대학을 졸업하고, 그해 9월에 모교 영어 교사로 취임했다. 취임 후 곧 분가하여 종로에 살림을 차렸다. 기나긴 타국 · 타향살이를 끝내고 마침내 가정이라는 안정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는 12세 때 은진 송씨 재숙(在淑)과 결혼했지만 15년간이나 헤어져 살았다. 장남 구관(求寬)도 27세 때 얻을 수 있었다. 지용은 이제 학생에서 교사로, 하숙생에서 한 집안의 어엿한 가장이 된 것이다.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용은 1930년 『시문학』 동인에 가담하게 되면서 문단의 중심권에 자리를 잡게 된다. 『시문학』의 출발은 김영랑과 박용철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휘문보고

이들은 동인지를 만들기로 합의했지만, 그들이 문단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당시 한국문단과 일본문단에 이미 알려진 정지용 시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들의 입장과 지용의 시적 경향, 그리고 한국문단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 이제 한국문단은 ‘순수시 운동'을 운위할 수 있게 되었다. 지용은 용아(龍兒) 박용철이 『시문학(詩文學)』에 이어 발간한 잡지 『문예월간』과 『문학』에 계속 작품을 발표했고 이런 인연으로 용아는 지용의 첫시집 발간을 주선하여 시문학사에서 『정지용시집』이 발간되었다.

지용은 1933년 6월에 창간된 『가톨릭 청년(靑年)』의 편집 고문역을 하며 여기에 많은 신앙시를 발표했다. 8월에는 반카프적 입장에서 순수문학의 옹호를 취지로 이종명, 김유영이 발기한 <9인회>의 창립회원(이태준, 이무영, 유치진, 김기림, 조용만 등)이 되었다. 이종명, 김유영 두 사람은 초기 탈퇴하고 주도적 역할을 상허(尙虛)와 지용이 하면서 휘문 동문인 박팔양과 김유정을 끌어들였다.

아래 설명 참조

1932~33년경 8월 14일 삼천리사 주최 문학좌담회

종로 2가 백합원에 모여서 윗줄 왼쪽부터 김억, 이헌구, 이하윤, 김기림, 김동환, 아랫줄 왼쪽부터 최정희, 이선희, 노천명, 정지용

이러한 문학활동 가운데 이제 지용은 『문장(文章)』지의 시부문 고선위원이 되면서 30년대 시단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문장』지는 김연만이 출자하고 상허가 편집을 맡은 문예지였는데, 이 잡지를 출발로 하여 한국문단의 추천제가 정착되었다. 그만큼 추천이 엄격하고 권위가 있었다.

추천 분야는 셋으로 지용이 시를, 상허가 소설을, 가람이 시조를 맡았는데, 여기서 지용은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청록파 시인을 비롯해 이한직, 김종한, 김수돈, 황민, 박남수 등의 시인을 추천했다. 그는 추천을 하고 나서 꼭 추천사를 썼다. 이 추천사가 당시 추천을 받으려는 시인 지망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영향으로 지용의 아류가 양산되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고독과 빈곤 속에 성장한 지용은 현실과는 다른 아름다운 꿈과 동경의 내면세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자연스럽게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나가는 정신적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또 그가 불행한 환경 속에서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꿈을 가지고 문학적 상상력을 개성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었던 심리적 요인으로, ‘개천에서 난 용’으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기대감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기대감은 그를 긍지가 강한 인물로 성장하게 만들었고, 이는 유년의 불행을 극복하는 정신적 힘이 되었으며 커서는 문학적인 상상력을 완성시키는 정신적 자양이 되었던 것이다.

정지용의 생애는

  • 유년기(1~16세)
    출생에서 옥천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4년간 한문을 수학하기까지의 생애
  • 청년기(17~28세)
    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을 다니기 까지의 생애
  • 유년기와 청년기는 무엇보다도 지용의 시 세계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이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던 해부터 지용의 객지생활은 시작되어, 14세에 상경하여 4년간 한문을 배웠고 5년간 고보를 다닌 후, 6년간 일본 유학생활을 했다.
    지용은 이렇게 14세부터 28세까지 15년 동안이나 공부를 위해 집을 떠나 있어야 했다.
    그의 객지체험은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체험이 그의 시 세계의 저변을 이루고 있다.
  • 장년기(29~44세)
    모교인 휘문고보 교사를 지내기 까지의 생애
  • 말기(44~49세)
    해방에서 6·25전쟁 중에 납북되기까지의 생애

이러한 시기 구분은 시기별로 지용의 생애에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데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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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