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지용선생의 작품 안내
정지용선생의 시, 산문의저작권은 정지용선생의 유족에게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산문
「동경대진재 여화(餘話)」 전문
1 <지금 不呈鮮人 수백명이 폭탄과 무기를 잡고 構濱地區로부터 동경 시내로 향하여 급진중이다.> <大震災중에 쩔쩔매는 동경시민의 생명 재산을 노리어 불령선인이 행동을 개시한다>는 등등의 신문 호외가 25년 전 9월 1일 동경대진재가 돌발한 직후 일본 전국에 놋방울을 울리며 돌았다. 일본 관동지구 전역에 걸친 대진재가 참담무비하였던 것은 이제 다시 이야기꺼리도 될 것이 아니라. 다만 땅이 들석어리고 海손嘯가 들이밀리고 화염이 대양과 같고 무수한 시체가 노르끼한 지방에 불이 붙어 오두둑 오두둑 타는 중에도 일본제국주의 지배계급놈들은 잔인 무도한 묘안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다. 얼결에 당하고 난 대진재가 무서웠다기보담도 일본 지배계급놈들은 진재를 이용하여 폭발될가 하는 일본 사회주의 계급혁명이 실상 치가 떨리도록 무서웠던 것이다. 말하자면 일시 일부분의 千變地災로 일본제국이 거꾸러지는 것이 아니라, 혼란기에 기성 자기계급이 자기민족 중 피압박계급에게 일거에 전복될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이런 비상사태를 만나 이 놈들의 상투수단이란 간단한 것이다. 터문이 없는 유언비어를 지어내어 이민족 이국가에 향하여 자민족의 적개심 증오심을 도발 선동하는 것이다. 이런 음험한 모략에 걸릴 것이 일본놈 소위 애국주의 청년단원들이고, 사상 최대 테로 血祭에 쓰러진 것이 당시 일본 在留 조선동포 주로 근로 인민층이었던 것이다. 日本刀 竹槍에 쓰러진 동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원수의 발치에서 최후로 <아이고!>―哀號를 남기고 죽은 인명이 정확한 수자로 알 수 없이 일본놈의 말로 거저 수만명이었던 것이다. 악귀놈들이 나중에 뒤통수 넓적한 사람, 얼굴이 넓은 사람, 일본노동자 중에도 九州집2003년 6월 16일 사투리 쓰는 사람까지 마구 때려 죽였다. 찔러 보아 <아이다!>가 아니고 <아야!>하는 사람은 모조리 학살하였던 것이다. 자본주의 신문 한 회분의 호의가 사상 최대 죄악을 감행한 것이다. 우리 동포를 대량학살로 일소한 후 이놈들의 신문기사는 <조선인을 동포애로 인도애로 대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진재혼란기에 우리 교포 근로 인민층은 고사하고 일본인 사회주의자도 결코 무슨 혁명 一發를 기도한 寸暇도 없었던 것이다. 진재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전복이었기에 호흡이 막히고 심장이 죄어들고 머리가 둘리고 다리에 쥐가 오르고 모발에 불이 붙는 판에 혁명가가 스리가 아닌 바에야 그러한 天道的 순간에 비인도적 惡戱를 감행할 여가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이놈들의 망상은 한이 없다. 미국서 군함이 구조품을 滿載하고 최대속력으로 동경만에 들어왔다. 구조물자를 받고 나서는 미국해군이 동경만의 수심을 비밀히 측량하였다고 은혜를 트집으로 돌려 보내고 소련서 온 구조군함은 정박도 불허하고 쫓아 보냈다. 원조품 실은 4개 소련 군함측에 <세계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하라!>는 露文字로 크다막하게 써 붙인 것이 싫어서 국제간 우의까지 모욕하여 恩義를 원수로 갚아 보낸 것이다. 남의 나라 항구에 국가소유 군함에 저의 천황의 일개 <가족문장>을 붙이고 드나드는 놈드이 <세계 프롤레타리아는 단결하라!>는 전세계 근로인민의 <國是>를 표어로 써 붙인 구조함이 무엇이 그다지 미웠던 것일까? <桃太郞>적 약탈선의 童話로 교육받은 놈들이 되어서 국제적 은의도 침략으로 망상하였던 것일까 한다. 당시 조선 우리 본국에서는 어떠한 動議가 있었던고 하니 <일본인이 아무리 우리 무고한 교포를 학살하였다 할지라도 우리는 원수를 은혜로 갚아야 한다> 고 고 月南 李商在옹과 尹致昊 등 기독신교도들 중심으로 종로 YMCA회관에서 대연설회를 열고 일본진재민 구조금을 거두어 금액과 물자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 아니해도 당시 총독부놈들이 전조선 지역에서 겅제로 돈 곡식 물자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징발하였던 것을 어찌 하랴! 인도주의자 月南선생의 박애주의가 나빴던 것이 아니라 도야지에게 진주보다는 일본지배계급놈에게 <인도주의>란 <귀신에게 쇠방망이>를 제공하였던 허무한 꼴을 무척 보았던 것이 쓸쓸한 동키호테의 괘사가 아니었던가? 그러구려 25 년을 지난 오늘날, 이 「東京大震災 餘話」를 어떻게 現今 현실사태에 연속시킬 것인가?2 빠진 이야기를 다시 잇거니와 동경 전지역에 누워 쌓인 진재로 죽은 또는 학살당한 우리 동포의 참혹한 시체를 운반 소각 청소하는 고역을 一命을 겨우 건진 우리 동포 노동자들이 맡게 되었던 것이다. 듣자 하니 이에서 한 몫을 착실히 본 자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相愛會>라는 말하자면 이해의식을 파악치 못한 조선인 부랑층 자유 노동자들을 강제 규합하여 의식적 조직 노동자 동포들에게 阿日者 결사의 당수가 되어 광산권을 잡고 부자가 되고 갖ㅂ은 못된 짓 행패를 거침 없이 자행하였던 것이다. 요지음은 그는 동경서 元 영친왕 李 을 떠메고 복벽운동을 음모하고 있다는 말까지 있으나 그것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일본 제국주의자놈들과 친일파놈들이란 이렇게 더럽고도 간악한 지긋지긋한 전통의 뿌리가 깊은 것이다. 동경대진재중 대량학살이 있었는가 하면 바로 다음 해 일본 三重縣 탄광에서 조선인 광부 삼백명 이상을 작업중 탈출 계획이라는 명목하에 또 학살한 일이 있었던 것이나 원수를 은혜로 갚는 조선 민족주의자들은 탄핵연설 한번 하지 못하고 일본 대판 동경 등지에 있던 조선노동자 학생일본인 사회주의자 연합으로 탄핵연설대회를 열었으나 연사의 말이 대진재 학살사건과 심중현 탄광 이변에 미치기만 하면 즉시 일경놈들이 <중지!><중지!>를 연발하였던 것이니 갸륵하게도 괘씸하기는 조선인 형사놈들이 학생 연사의 하숙까지 개처럼 따라 오던 것이다. 어릴 때 감상에서도 피중압 피착취 계급은 <조국이 소련이 아니라> 따로 조국을 획등하여야만 하겠구나 하였다. 이원통한 이야기가 한이 있느냐? 일본놈의 우리 동포에 대한 테로 학살은 왜구해적의 조선연안 침략과 임진왜란 이래 적어도 수백년 동안 끊임이 없었던 것이니 이 동안 유명무명의 친일파 민족반역자도 끊임이 없었던 것이다. 8·15 이후 在日本 조선동포의 인원수를 60만이라고 계산하나 朴烈씨 말에 의하면 80만이라 하며 전쟁중에는 2백만을 計上하였던 것이다. 몇 달 전에 일본당국자놈들이 조선인 교육 탄압 악행이며 조선인 교육기관 약취음모이며 이에 따른 조선인 총살 수감문제 등등은 이것이 전패국 일본의 <민주주의>가명하에 다시 횡행하는 제구국주의적 官權 테로가 아니고 무엇이냐? 너이놈들이 무슨 민주주의란 말이냐! 만주주의가 용충하는 씨와 피가 다른 것이다. <天皇神聖 不可犯>이 일조에 <상징적 천황>으로 바뀌었을지라도 최고 전범자가 최고 지도자가 되어 대원수 제복을 <모오닝 코오트>로 갈았을지라도, 봉건적 천황이 자본주의적 천황인 이외에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일찍이 일본천황을 폭탄으로 모살하려다가 日憲에게 종신형을 받았던 애국지사가 제일 조선동포 교육피해사건에 대하여서는 도로혀 일본 관헌놈드과 언사를 符同하여 <조선인 공산주의교육 탄압>이라는 변호를 모국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감옥이 하도 어두어서 대명천지에 나서서도 노선이 좌우를 밝히기에 현기가 나는 것일까? 무릇 침략적 島國근성이 대장군 맥아더의 관용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니 史上 일본제국의 전쟁이란 것은 無非 집단테로의 확장인 것이었다. 이놈들의 테로禍를 가장 장구하게 극통하도록 받은 이가 조선민족이니 이에 대한 배상 보복을 따진다면 여간 대마도 회수쯤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동경에 조선인 일본총독이 부임할 만한 일이나 이것은 다시 대조선 제국주의가 아니었으면 요행한 일일 것이니 일본이 설령 신성천황을 추방하고 神聖大統領―혹은 尾崎行雄쯤을 推제戴할지라도 8·15 일제 항복후에 맥아더적 신질서가 우리 민족에 다소 회의를 갖게 한다면 戰前에 다소 親美英波들을 수습하여 組閣을 분분히 명한댓자 일본 재 무장설이 진주만 재습 호외로 실현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먼저 天皇制 타도를 일본 공산당계열과 朴熱씨의 제안대로 실시해야만 일본 정치가 일본인민에 돌아갈 수 있으며 따라서 80만 재일 조선동포도 세계인민의 이익을 공동향수할 t수 있을 것이니, 대마도 회수와 고구려판도 대만주 요동 칠백리 회수와 아울러 못지 않게 민족 만년의 낙토가 처처에 있으리라.祖國땅이 좁은 까닭이 아니라 祖國을 팔아 먹은 者가 있어 元甫와 順이는 隅田川 찢긴 시궁창에 녹쓰른 한가락 <와이아>에 매어 달려 火焰위에 검푸르게 닿은 잃어진 祖國 하늘 밑에 迫農場이 들어선 南田과 不二農場이 마름하는 故鄕 北沓을 생각하였다.―薛貞植 詩의 一節―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제1유형 : 출처표시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 :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문화관광과
연락처 : 043-730-3407
최종수정일 : 2018.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