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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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시인
정지용

우리 시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 노래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이다.
지용과 함께 1930년대 우리 문단을 풍미한 김기림은 지용이
“조선 신시사상에 새로운 시기를 그으려한 선구자이며,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적 대상의 적확한 묘사력과 언어조탁, 시적 기법의 혁신으로
모국어를 현대화시킨 최초의 모더니스트요 탁월한 이미지스트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시대 최고 시의 성좌임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고독과 빈곤 속 성장

  1. 1902

    6月 20日(음력 5月 15日) 충청북도 옥천군 내남면 상계리 추정(현 옥천읍 향수길56) 부 연일정씨(延日鄭氏) 태국(鄭泰國)과 모 하동정씨(河東鄭氏) 미하(鄭美河)사이에 독자로 태어남

    지용(池龍)의 아명은 못에서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태몽을 꾸었다 하여 지용(芝溶)이란 같은 발음의 한자에 맞춘 것

  2. 1910

    4月 6日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 입학

  3. 1913

    동갑인 은진송씨(恩津宋氏) 재숙(宋在淑)과 결혼

  4. 1918

    휘문보고(徽文高普)에 입학, 이때부터 습작활동을 시작

  5. 1919

    12月 『서광(曙光)』 창간호에 자전적 성장이야기인 소설 「삼인」을 처녀작으로 『요람(要籃)』 동인 지를 김화산, 박팔양, 박소경 등과 함께 주도

  6. 1923

    휘문고보의 교비생으로 경도(京都)에 잇는 동지사대학(同志社大學)에과 입학

  7. 1926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프란스」를 비롯하여 동시 및 시조 발표

검정두루마기 교사

  1. 1929

    동지사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일본 문예지(文藝誌) 『근대풍경(近代風景)』에 일본어로 된 시들도 많이 투고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 북원백추(北原白秋)의 관심을 받음

    동지사대학 영문과 졸업. 휘문고보의 영어 교사로 16년간 재직 시 「유리창」을 씀

  2. 1930

    김요량, 박용철과 『시문학』 동인으로 참가, 1930년대 시단의 중요한 위치에 서게 됨

  3. 1933

    『카톨릭 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음. <구인회> 문학친목단체를 결성

  4. 1935

    제1시집 『정지용 시집(鄭芝溶詩集)』을 시문학사에서 출간

  5. 1939

    『문장』지 추천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박남수 등을 등단시킴

38년만에 귀향한 민족시인

  1. 1941

    제2시집 『백록담(白鹿潭)』을 문장사에서 출간

  2. 1945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로 직장을 옮김. 담당과목은 한국어와 나전어(羅典語)

  3. 1946

    경향신문의 주간이 됨. 『지용시선(芝溶詩選)』이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4. 1947

    -경항신문사의 주간직을 사임하고 이여여자대학교 교수로 복직. 서울대 문리과대학 강사로 출강하여 『시경(詩經)』 강의

  5. 1928

    2월 이화여자대학교를 사임하고 녹번리 초당에서 서예를 하면서 소일함. 『문학도본(文學讀本)』이 박문출판사에서 출간

  6. 1949

    『산문(散文)』이 동지사에서 출간

  7. 1950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정인택, 김기림, 박영희등과 같이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감, 이광수 계광순 등 33인이 같이 수감되었다가 그 후 폭사당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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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8.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