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생가이야기2

  • HOME
  • 이야기옥천
  • 옥천 구읍을 찾아서
  • 정지용생가이야기2
정지용 생가이야기2
정지용 생가이야기

섬세한 언어의 시인
정지용을 만나다.

정지용 생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부엌을 제외하고 정면 2칸은 퇴칸 구조이다.

생가의 전체적인 형상은 ‘ㄱ’자 집이며 마주보이는 방향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ㅡ’자형 창고가 있다.

주거용의 ‘ㄱ’자 집은 부엌 뒤로 방 1칸을 더 내어 ‘ㄱ’자를 이루는 특이한 구조이다.

이 방은 뒤란 담 쪽으로 분합(分合)문이 나 있으며
방 안쪽에 안방과 연결되는 통로가 있는데
길이는 5미터정도이며 꼭 사람하나 지나갈 만큼 좁다.

정지용 생가1
양쪽 방을 오갈 수 있는 이 통로는양쪽 방에 문을 달아 폐쇄형이다.

굳이 그 이유를 유추(類推)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전통 가옥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내외벽(內外壁)의 유래를 들 수 있는데 실제 그랬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옛날 반가(班家)에서는 옥상옥(屋上屋)처럼 담장 안에 담을 만들어 내외벽을 쌓았는데, 그것은 여인들을 배려한 특별한 공간이었으며 안사람에 대한 예의를 중시 했던 우리네 풍속이었다.

정지용 생가의 방과 방 사이의 소통로는 이러한 연유에서 기인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내외벽을 언급해 보았다.

전통적으로 내외가 엄격 했던우리나라의 경우

반상(班常)의 구분 없이 금남(禁男)의 구역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부엌이다. 부엌은 여성만의 활동영역이었으며 동시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목적성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민가에서는 정지용 생가의 부엌처럼 땔나무와 불쏘시개를 보관 할 수 있는 창고의 용도로 일부 사용하였다. 이런 점에서 정지용 생가의 부엌구조는 민가의 일반적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엌 문 옆을 본다면 돌절구, 나무절구와 공이가 놓여있는 자리 언저리, 이곳이 정지용 생가임을 알리는 표시판을 또 하나 만날 수 있다. 이 표시판은 정지용의 모습과 함께 그의 태어난 년도와 날짜, 생가가 언제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지어졌다는 내용을 동판에 돋을새김 하고 있다.

1988년 정지용의 해금조치가 있은 후 모임이 시작된 ‘지용회'가 생가가 복원되기 전 이곳 어디쯤에 그 자취만이라도 전하고자 붙여놓은 표시판을 기념 삼아 다시 붙인 모양이다. ‘지용회'가 정지용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버리지 않고 아끼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통의 경우가 장독대는 뒤란에 위치하나 정지용 생가의 장독대는 우물가 담장 밑에 다소곳하다. 우물 옆의 낮은 굴뚝도 눈여겨 볼일. 민가의 굴뚝은 그저 연기만 토해내면 그만이라 돌과 흙을 되는대로 쌓아 만들거나 깨진 항아리나 판자로 굴뚝을 만들어 뒤란에 두는 것이 보통이나 어쩐지 이곳은 우물가 옆이다. 낮은 굴뚝의 연기는 바로 흩어지지 않고 집 마당을 휘돌아 나가기 마련, 연기는 소독기능도 한다하니 그 지혜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정지용 생가2 정지용 생가3
그때가 되면

이 생가는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네 정서를 오롯하게 전하는 실체로서 더욱 다가오지 않을까.

정지용 생가 지도로 옥천군청방면-옥천군청사거리,옥천고등학교,옥천IC,문정삼거리,구읍삼거리,아리랑,춘추민속관 맞은편에 정지용 생가가있습니다. 부산,서울방면-경부고속도로,문정삼거리,구읍삼거리,아리랑,춘추민속관 맞은편에 정지용생가가 있습니다. 석탄리방면-구읍삼거리,아리랑,춘추민속관 맞은편에 정지용 생가가 있습니다. 보은방면- 문정삼거리, 구읍삼거리,아리랑,춘추민속관 맞은편에 정지용 생가가 있습니다. 정지용 생가에서 마당넓은 집을 지나면 옥천향교, 육영수 생가지도 있습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최종수정일 201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