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에 마주치는 애틋한 사랑의 전설
석호리 입구에서 호수 깊숙이 들어가는 또 다른 오지 진걸마을은 산 깊고 물 깊은 마을이다.
본 마을이 수몰되기는 막지리와 마찬가지. 수몰되기 전 50여호의 마을규모였지만 지금은 여남은 채의 집이 마을을 이루며 그 속에서 20명 남짓의 주민이 살고 있는 고장이다.
읍내 나간 마을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배는 뜨지 않는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가 울릴 것이니 하던 일을 계속한들 문제 될 것 없겠다.
산 넘고 호수를 따라
돌아 산 깊고 물 깊은 오지로 가는 길. 진걸마을 가는 길은 호수와 산, 그리고 굽이치는 길이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더욱이 은행나무가 가로수이어서 가을이 깊어지면 샛노란 은행잎이 멋스러운 가을 풍경을 자아내겠다.
석호리와 진걸마을 갈림길에서 진걸마을로 길을 잡아 약 1km 전방. 이곳이 국가 하천 금강임을 알리는 표지판 뒤로 대청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사랑을 새겼으니 이름 하여 명월암이다.
이곳에서 진걸마을로 가는 언덕을 넘기까지 0.6km의 거리구간은 대청호를 가장 호방하게 바라볼 수 있는 구간이자 갑신정변을 일으킨 김옥균과 기생 명월이의 설화를 지닌 청풍정과 명월암이 물 너머 나그네에게 호수처럼 고요히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곳이다.
청풍정과 명월암의 설화는 이렇다. 한 시대를 영웅으로 풍미하고자 했던 김옥균의 영광은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을 맺고 이곳 옥천의 금강 가 깊숙한 곳으로 숨어들면서 시작된다. 이곳 청풍정에서의 나날들은 평소 김옥균을 사모해 마지않던 기생 명월이로서는 더 이상의 행복은 없었다.
그러나 명월이의 그에 대한 사랑은 지긋하여 혹여 자신 때문에 그가 대망을 꺽을까 염려한 나머지, 꼭 뜻을 이루라는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강물에 뛰어든다. 김옥균과 명월이의 사랑은 대장부의 길을 다시 열고자 강물에 뛰어든 명월이의 희생어린 사랑에 끝이 나고 김옥균은 그 사랑에 감복하여 명월이를 그리며 바위에 그 사랑을 새겼으니 이름 하여 명월암이다.
대망의 꿈은
삼일천하 물거품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사랑마저 잃어버린 김옥균의 행적은 그 후로 전하지 않는다.
그때의 명월암은 20m 남짓 절벽이었으니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겠다.
1975년 3월에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완공한 대청댐의 담수가 시작되면서 어릴 적 추억이 무르익던 옥천의 안남면과 안내면의 강마을은 금강의 아름답던 여울과 함께 물속에 잠기었다.
그 언저리 높게만 보였던 산들은 제 키만큼 불어난 물에 산자락을 드리우고, 더러는 물 돌아가는 산모롱이가 되고 더러는 섬이 되어 호수의 잔물결만 찰싹인다.
실개천 흐르는 듯 맑디맑았던 금강 여울이 대하(大河)를 보는 듯 하게 변하여 대청호로 흘러들고, 대청호는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의 땅에서 다도해 (多島海)의 풍광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호수의, 물안개 피어올라 자무룩한 아침의 고요가 있고, 안개 걷혀 곳곳에 모습을 드러낸 비경이 있으며, 해질 무렵 황금빛 잔물결이 먼 산의 실루엣을 머금고 있는 풍경 속에서 대청호 주변 옥천의 산하는 이제 호수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