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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군북면 이평리
이평리(梨坪里)는 원래 군북면 이탄리(梨灘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추소리(楸沼里)와 이평리로 나뉘었다.

마을이름유래

이평리라 부르게 된 것은 이탄(梨灘)의 이 자와 갈평(葛坪)의 평자를 한자씩 취하여 이평리라 하였다. 이탄은 “배일” 의 옛말을 한자로 쓴 것인데 이곳을 “배일”또는 “배여울”이라 불렀는데, 이는 물이 적으면 여울로 건너다닐 수 있고 물이 많으면 배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배여울” 이 변하여 “배일”이 되었는데 타는 배를, 먹는 배로 한자화하여 쓰고, 여울탄 자를 써서 이탄이라 하였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군북면 이탄리라 하여 57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79호가 살았다고 되었는데 이때는 추소리와 이평리를 관할하였다.
  • 1908년 : 군,면 행정구역 조정 때에 군북면을 둘로 나누어 군북일소면(郡北一所面)과 군북이소면(郡北二所面)으로 하였는데, 이탄리는 일소면에 속했다.
  • 1914년 : 행정구역의 전면 개정 때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북면이라 하면서, 이탄리를 추소리와 이평리로 나누었다.
마을이야기
1970년대 군북면 이평리 하면 양수장 시설만도 3곳이나 있을 정도로 논이 많았고, 새마을사업이 일찍 시작돼 풍요한 마을로 86호가 살만큼 큰 규모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대청댐 건설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수몰 되었다. 대청호 담수가 시작되면서 본래 마을이 있었던 곳은 모두 물속에 잠겼고, 마을은 한 순간에 분리되었다. 자연마을 중 '공곡재'를 제외하고 '국원이골(구건리골)'과 '추실'은 주민들이 이주해 새로 만든 마을이다. 고향 주민들이 떠난 마을 한 곳인 '갈마당'에는 다른 곳에서 3가구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최근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고 있다. 수몰 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을 포함한 4개 자연마을 중 가장 큰 국원이골(질벌)과 예부터 있었던 공곡재와 갈마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추실, 갈마당 등 3개 마을은 대청호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3백50여년전, 반남박씨(潘南朴氏) 문중인 박호 공이 처음 터를 잡음으로써 마을이 생기게 되었고 그로부터 반남박씨 집성촌으로 이어져 왔다. 수몰되기 전만 해도 마을에 타성은 80여호 중 10여호에 불과할 정도로 박씨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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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군북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