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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안내면 오덕리
오덕리(五德里)는 원래 안남면(安南面)에 속하여 있었고 안덕리(安德里)와 오산리(五山里)가 합하여진 마을이다.

마을이름유래

오덕리라 부르게 된 것은 두마을을 합하면서 오산리의 오(五)자와 안덕리의 덕(德)자를 한자씩을 택하여 오덕리가 되었다. 안덕은 “안덕이”를 한자화하면서 발음 그대로 안덕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안덕이”의 옛말을 해석하여 보면 “안”이란 안에 있다는 뜻으로 안내(安), 즉 가운데란 말이고, “덕”은 “언덕”이나 “높은 곳”이란 뜻으로 “안 골짝 언덕에 있는 마을”이 되므로 이름을 지을 때 지형에 따라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안남면 안덕리에 24호가, 오산리에 17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안남면 안덕리에 26호가, 오산리에 27호가 각각 거주했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조정때 안덕리와 오산리를 합하여 오덕리라 불러 오늘에 이른다.
  • 1973년 :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남면에서 안내면으로 관할구역이 변하였다.
마을이야기
이 마을 북쪽에 있는 금적산은 조선초기에 봉수대가 있었고 그 자리에 통신탑이 위치하고 산에 황금이 많이 묻혀있어 금적산이라 하였는데 조선말엽과 일제시대에 금생산이 많았다. 자연마을로는 안덕이, 팽정, 거머고개(개무티, 거무티), 새터, 안지목 등이 있으며 금을 캐던 금적산 아래 위치한 마을로 신랑바위와 각시바위가 마을을 수호한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팽정을 큰길이라 부르는데는 이유가 있다. 중봉 조헌 선생이 청산과 청성에서 모인 의병을 이끌고 보은으로 가기위해 택한 길이 바로 마을 뒷길이었다고 한다. 첫전투를 치르러 가기 전날 팽정에서 하루를 묵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왜적과 맞서는데 요긴하게 쓰인 길이니 또한 큰길이라 불러 마땅하다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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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안내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