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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안내면 답양리
답양리(畓陽里)는 원래 가산리(佳山里)에 속해있던 마을이었으나 후에 답양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마을이름유래

답양리(畓陽里)는 1636년 병자호란 때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양지골에, 경주김씨(慶州金氏)가 논골에 각각 피난을 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양지골을 양지동(陽地洞)이라 하고, 논골을 답동(畓洞)이라 한자화하여 썼으며, 답동의 답(畓)자와 양지동의 양(陽)자를 한자씩 취하여 답양리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기록에 의하면 가산리라 하여 23호와 32호가 거주했다.
  • 1891년 : 신묘장적기록에 의하면 가산리라 하여 23호와 32호가 거주했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조정 때 가산리를 답양리와 용촌리로 나누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야기
답양리는 신라 선덕여왕 19년에 창건한 가산사가 있다. 호국불사인 가산사는 영규대사와 중봉선생이 시국을 걱정한 나머지 의병과 의승군을 모집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훌륭한 호국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이 모셔진 영정각과 산신각이 충청북도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화골 남쪽 장군봉(517m) 정상에 삼국시대 성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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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안내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