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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군서면 은행리
은행리(銀杏里)는 원래 군서면 은행정리(銀杏亭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사정리(沙亭里)와 은행리로 나누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은행리라 부르게 된 것은 원래 이 마을을 “양심이”라 불러 왔는데 조선초기 이곳을 지나던 도사가 이 마을에 오래 묵은 은행나무가 있으니 양심이라 하지 말고 “은행리”라 부르면 잘살게 될 것이라 하여 그 후부터 은행리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은행정리라 하여 56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67호가 살았다.
  • 1908년 : 군서면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으로 나누면서 은행정리는 이소면에 속하였다.
  • 1914년 : 행정구역의 전면 조정 때 일소, 이소면이 합쳐 다시 군서면이 되고, 이때 은행정리를 사정리와 은행리로 나누었다.
마을이야기
윗양심이 마을 뒤로는 성치산성(성재산성)이 있다. 백제계 산성으로 이웃마을인 사양리 계현산성과 함께 상주-옥천-대전 남부(소호리산성, 사정성)-부여로 통하는 길의 길목인 닭재를 지키는 구실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을이 은행리로 불리게 된 동기는 마을입구에 있는 은행나무와 연관이 있다. 1982년 군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2008년 기준으로 수령이 대략 346년에, 높이는 16m라 기록되어 있다. 조선 초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이바지했던 무학대사가 이 곳을 지나다가 마을입구에 은행나무가 있으니 마을이름을 은행리로 바꾸라고 했고, 이 제안에 따라 마을 이름은 은행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전설을 따르자면 나무의 수령은 600여년에 이를 것이며, 2008년 현재 나무 둥치는 썩어 없어졌고, 주위에 가지들이 뻗어 둥글게 나무를 지탱하고 있어 ‘효자목’이라고도 부른다. 윗양심이(서당골)에는 1909년 군서면에서는 처음으로 사립 화명학교(군서초등학교 전신)가 설립되어 1921년 정식으로 군서공립보통학교로 인가받았다. 1925년 군서면 동평리로 이전할 때까지 인재양성의 산실 구실을 했다.
마을의 명소
윗양심이 마을에는 여성과 남성선돌이 한 기씩이 있다. 이와 함께 솟대와 장군석이라고도 부르는 돌장승이 있다. 솟대는 언제 세웠는지 모르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선돌에 새끼줄을 두르고 위하는 전통은 여전하다. 솟대와 돌장승, 선돌이 있는 길목을 ‘짐대거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에서도 신성시하고 위하는 길목이었음을 알게 해주며 마을회관 주변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고리버들 고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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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군서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