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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군서면 오동리
오동리(梧桐里)는 원래 군서면 오동리로 불려오던 마을이다.

마을이름유래

오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풍수설에 군서 8명당 중의 하나인 ‘오동제월(梧桐霽月)’이라는 명당이라 하여 오동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와 1891년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오동리라 하여 62호와 72호가 살았다.
  • 1908년 : 군,면의 일부조정 때 군서면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으로 나누었으며 오동리는 일소면에 속해 있었다.
  • 1914년 : 행정구역을 전면 조정할 때 일소면과 이소면을 합쳐 다시 군서면이라 하였고 이에 속하게 되었다.
마을이야기
1908년 군서면을 일소면, 이소면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 군서면으로 통합한 후인1930년대 중반까지도 오동리에 군서면사무소와 군서주재소가 있었다. 군서면사무소는 1935년께 현재의 소재지로 이전했다. 오동리는 특히 백제, 신라의 접경에 위치한 마을로 역사 흔적을 많이 간직한 마을이다. 식장산 줄기인 뒷산에는 두개의 백제계 산성이 있다. 마을의 동북 방향에 있는 노고산성(할미성)과 서북 방향에 있는 노구산성(할아버지성)이다. 성을 쌓을 당시 할머니들이 쌓아서 할미성, 할아버지들이 쌓아서 할아버지성이라고 했다고 전하는데 백제 성왕이 할미성에 오르려다 신라군의 기습을 받고 죽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와 함께 숯고개 전설도 전한다. 백제 마지막 의자왕은 충신 성충이 육로로는 신라군이 탄현(숯고개)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로로는 백마강을 넘지 못하게 막으라는 충언을 듣지 않았다가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인데 오동리에 있는 숯고개가 그 고개였다는 것이다. 오동리 기독교수양관 앞 뜰인 강당뜰은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관련 희생자들이 처형을 당한 곳이기도 하다. 오동1리 마을에는 경주김씨(慶州金氏)가 17대를 넘게 살아왔다고 전하며 풍천임씨(豊川任氏) 세거비도 무중골 마을 앞에 서 있고 옥천전씨 재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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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군서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