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읍면정보
마을이야기
군서면 사양리
사양리(舍楊里)는 원래 군서면 사음동리(舍音洞里)에 속해있던 마을로, 후에 사양리(舍楊里)와 상지리(上地里)로 나누어 현재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사양리라 부르게 된 것은 마을이 골짜기 안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마을은 분지로 산이 둘러싸여 있어, 마치 마당에 울타리를 한 것 같다 하여 “마랑골” 이라 불렸는데 한자로 쓰면서 “마음”이라 하였으며 그 후 집사, 사시나무양 자를 써서 사양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사음동리라 하여 68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74호가 살았다.
  • 1908년 : 군서면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으로 나눌 때 사음동리는 이소면에 속했다.
  • 1914년 : 행정구역 전면 조정 때 일소, 이소면을 합하여 다시 군서면이라 고치면서 이때 사음동리를 상지리와 사양리로 나누었다.
마을이야기
군서면 사양리 마랑골과 대전시 낭월동을 연결하는 곤룡터널이 완공되기까지 군서면민들은 군서에서 대전시로 곧바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원했다. 이는 사양리 곤룡재(골내미재)가 나뭇짐을 지고 대전으로 넘어가던 주요 길이었던 때문이다. 터널 길이는 536m, 폭 8m에, 1,266m의 진입도로가 완공돼 2000년 5월15일 준공식을 가지면서 여름철 장령산휴양림을 찾는 대전시민들의 중요 교통로가 되었다. 서성골에는 선인독서(仙人讀書)의 명당이 있다고 전하니, 선비들의 책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전한다. 사양리는 특히 삼국시대 백제의 최전방 기지로서 마을의 북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 무려 네개의 성터가 있어 전방 요충지로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마을이다.
마을의 명소
북쪽으로부터 사양리산성, 망덕봉망루, 계현산성, 국사봉망루에 이르기까지 백제가 신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이중 대전을 거쳐 부여로 향하는 중요한 통로인 닭재를 지키려는 중요 기지가 계현산성이다. 사양리의 대부분은 대전시 녹지공간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함박골소류지와 마음소류지가 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군서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