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읍면정보
마을이야기
군서면 하동리
하동리(下東里)는 원래 군서면 동오리(東五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서 후에 상중리(上中里)와 하동리로 나누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돈목은 “마리들”이란 옛말을 한자화 하면서 쓴 것인데 “마리들”이란 백제시대 이곳에 군대가 진을 치고 말먹이는 풀을 재배하던 곳이라는 뜻이 있으며, 마곡은 “마고실”로 말을 기르던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한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군서면 동오리라 하여 81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109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 1908년 : 군,면을 조정하면서 군서면을 군서일소면(郡西一所面)과 군서이소면(郡西二所面)으로 나누었으며 동오리는 일소면에 속하였다.
  • 1914년 : 행정구역을 전면적으로 조정하면서 일소, 이소면을 합쳐 다시 군서면이라 고치면서 이때 동오리를 상중리와 하동리로 나누었다. 하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동오리의 아래쪽에 있다 하여 하동리라 하였다.
마을이야기
옥천읍 양수리와 하동리 옥녀봉 마을 사이에 있는 용봉에 용봉산성이 있다. 군서면 들판이 잘 보이는 성으로서 망루형 산성으로 활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옥녀봉 기슭에 자리잡은 옥녀봉 마을에는 ‘옥녀탄금’형의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 옛날 늙은 부모가 늦게 얻은 딸 옥녀가 가야금을 잘 타는 등 출중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미처 꽃봉오리도 펴보지 못한 채 돌림병으로 죽자 옥녀를 뒷산에 묻었는데, 산 앞에는 장고벌이라는 넓은 평지가 있어 그곳 지형이 `옥녀탄금형'이라는 명당자리였다고 한다. 1975년 옥녀봉 마을 뒤에 한국전력 신옥천전력소가 들어서면서 송전선 12줄이 가야금 줄과 똑같다 하여 옛 전설과 상통하고 있다는 묘한 여운을 남기게 하고 있다.
마을의 인물
일제강점기 3.1운동 당시 만세시위를 하며 일제에 항거하고, 고문에도 굴하지 않는 항일정신을 보여준 김순구(金舜九)선생의 애국정신이 살아 있는 마을이다. 김순구 선생을 주축으로 이 마을 애국지사 25명을 비롯하여 면민이 1919년 4월8일 하동리 앞산인 서화산(만세를 부른 산이라고 하여 만세봉이라고 한다)에서 만세를 불렀고, 모진 고문 끝에 순절했다. 김순구선생은 1919년 3월19일 옥천읍내를 비롯해 청주 만세운동, 청원 강내면과 미원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후손들은 일제 때부터 3.1정신 유지계를 조직, 운영하고 있으며, 2002년 마을에 김순구 선생과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충민사를 지었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콘텐츠 정보관리
담당부서 : 군서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