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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이원면 강청리
강청리는 신묘장적 이후 100여 년 동안에 가호수가 13배에 달하는 거대 마을로 바뀐 마을이다.

마을이름유래

강청리라 부르게 된 것은 1621년 강청리 사자바위골에 삼계서원(三溪書院)을 짓고 많은 유생들이 모여 공부할 때 골이 깊어 물이 많은데도 맑고 깨끗함이 이를 데 없음으로 물 강(江)자와 맑을 청(淸)자를 써서 강청리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남면(利南面) 강청리라 하여 33호가 살았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39호가 살았다.
  • 1914년 : 이남면(伊南面)에 소속 되었다.
  • 1929년 : 이원면(伊院面)에 소속 되었다.
마을이야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고 이원역이 강청리에 생기게 되자 교통이 좋아져 각급 면단위 기관인 면사무소, 파출소, 금융조합, 우체국 등이 이곳으로 모이고 1946년 병술년에 큰 수해로 인해 대흥리(건진, 이원, 강청)에 있던 장터가 침수되어 3년 뒤인 1949년에 시장이 옮겨오게 되니 새로운 문화, 경제의 중심마을이 되어 신흥리라 부르게 되었다. 신흥1리, 신흥2리, 신흥3리가 강청리에 속한다. 마을 서쪽으로 금산 골내미로 넘어가는 동냥골이 있고, 새터말, 도랫말, 서원골, 사자바위를 거쳐 대성산에 이르게 된다. 서원골에는 삼계서원 유지비가 있고 새터말 앞에는 애향심과 효를 강조한 충효비가 있고 이원역 광장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다. 신흥리에는 1920년 4월 1일 개교한 이원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사자바위골에 1984년 강청소류지가 설치되었다.
마을의 명소
이원장터는 우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거래 물량이 옥천을 능가하는 곳이었으나, 1960년대에 옥천읍에게 장날을 빼앗긴 후로 차차 쇠퇴하여 1980년대에는 완전히 폐장하고 몇몇 상점이 빈 장터를 지키고 있다. 신흥리라 불리는 이원역 광장에는 삼일운동 기념비가 서있어 일제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민족정기를 불태웠던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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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이원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