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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이원면 수묵리
수묵리는 원래 이남면(利南面) 세곡리(細谷里)에 속해 있다가, 편곡리(編谷里)에 소속 되었다가 후에 수묵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름유래

수묵리라 부르게 된 것은 수영골과 먹뱅이를 합치면서 수영골의 수(水)자와 먹뱅이의 먹묵(墨)자를 따서 수묵리가 되었다. 안타깝지만 일본식 이두 간자의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자연마을로는 먹뱅이, 수영골, 묵방을 비쳐준다는 새별마을로 되어 있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세곡리였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51호가 살았다.
  • 1914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편곡리라 하였다.
  • 1929년 : 행정구역 전면조정 때 편곡리를 평계리와 수묵리로 나누었다.
마을이야기
수묵리 주변에는 모정으로 넘어가는 모롱골(머정골)재, 노루목쪽으로 가는 매봉재, 새별로 가는 밤나무골이 있고, 너들머리, 뒤골, 큰삭골, 작은삭골, 불낭골, 가장산, 마전산 등이 있다. 수영(水永)골 주변에는 삼실 넘어가는 수묵재, 중심이(양산면)로 가는 대북재, 그리고 산재, 참쟁이, 동뫼, 산막골, 칙드렁골, 당산, 묵송골, 등이 있다.
마을의 인물
먹뱅이는 산골 마을로 한적한 농촌이나 1919년 3.1운동 때(3월 27일 이원장날)는 가장 민족정기가 살아있던 마을이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육창주(陸昌柱)씨는 대전 현충원에 모셔져 있고 같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허상기(許相基)씨의 묘비는 수영골과 먹뱅이로 가는 갈림길 부근에 있으며 평계리 산2번지에 유택을 정하였다.
마을의 명소
육창수, 육창문, 허상구의사가 고종인산일(1919. 3. 1)에 한양에 다녀온 후 이원에서 만세운동을 하였다하며 육창문집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그해 3월 27일 이원장터에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하였으며 허상기, 허찬, 허회, 공재익(평계리), 김용이, 이근봉(금산), 이호녕(지정리) 등이 주도하였으며 개심저수지 둑에 이와 관련 3.1운동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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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이원면
최종수정일 : 2018.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