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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면정보
마을이야기
이원면 평계리
평계리는 원래 이남면(利南面) 세곡리(細谷里)에 속해 있다가 편곡리(編谷里)로 변하였다가 후에 평계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마을이름유래

평계리란 명칭은 자연마을을 묶어 한마을로 만들면서 평촌(坪村)의 평자와 계촌(溪村)의 계자를 따서 평계리라 하였다. 평촌은 평지말을 한자화 하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며 계촌은 공씨들의 세거지로 공촌(孔村)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정(杏亭)은 살구정이를 한자화 한 이름이다. 살구정이에는 조선시대 여행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여 주던 율현원(栗峴院)이 있던 곳이다.

마을역사

  • 1739년 : 여지도서의 기록에 의하면 세곡리에 70호가 살았는데 이때는 수묵리와 평계리를 함께 관할하였다.
  • 1891년 : 신묘장적의 기록에 의하면 이남면(利南面) 편곡리라 하여 101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1914년 : 행정구역 일제 개편때 편곡리가 수묵리(水墨里)와 평계리(坪溪里)로 나뉘었다.
마을이야기
살구정이 쪽으로 공지넘골 참나무정, 안내골이 있고 마루성 쪽으로 장수 발자국이 있는 마당바위, 작은절터, 큰절터가 있고 가는밭날, 산제날, 대북재가 있다. 공촌과 계촌사이 마을입구 하천부근에 사람 키 크기의 평계리 선돌이 위치하여 있다. 공촌에는 공부자 78세손인 공영조(孔永兆)씨가 있고 그 앞집이 3.1운동 때 만세운동을 벌였던 애국지사 공재익씨 생가로 그 자손들이 살고 있다. 공씨는 고려 공민왕 때 5세인 창암선생(昌菴先生)이 노국공주의 호위무사로 들어와 67세조인 공원구(孔元龜)공이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여 공촌에 입향한 이래 20여대를 이어 살고 있다. 평계리에는 계촌저수지와 1961년 축조된 죽촌소류지가 있다.
마을의 명소
마을뒤쪽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머물렀다는 마니산성(마루성)이 있고 산 위엔 아직도 옛성터가 남아있다. 향로봉쪽 북문지는 북문다리 오종골쪽 남문지는 남문다리라 부르고 있다. 정상인 해발 640m 지점은 장대지로 추정되며 8부 능선쯤에 명천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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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 이원면
최종수정일 : 2018.08.23